개인적으로.. 세상에 귀하지 않은 책은 없다는 생각이지만,
한 권의 책은 마치 한 사람과 같아서 그것의 역할과 깊이가 참으로 천차 만별 입니다.
근래 읽은 베스트셀러들은 이해가 잘되게 너무 잘 쓴건지 혹은 가볍게 쓰여진건지..
몇 시간이면 훅 하고 쉽게 읽히고는 금방 또 잊혀져 버리는데,
이 아이는 (좀 바빴다는 핑계도 있지만.. ) 겨우 일독하는데만 꼬박 2주가 걸렸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것이, 책을 읽는 속도는 책을 써내려간 시간에 비례하겠지요..
20여년의 옥살이 그 긴 시간동안의 기록인데 함부로, 쉽게 읽혀질 리가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 교수님이 20여년의 옥살이 동안 가족들에게 보낸 서한을 엮어서 출간한 책입니다. 책의 표지에 적힌 아래 글 귀는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제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로는, 감옥살이라는 것이 대체 어떨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다만 내 상상이 어떤 것이든 실제는 그 이하겠지 하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그 환경이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밑바닥의 본인을 마주하게 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 했습니다. 저자가 존경스러운 것은 그런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의연하게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더 꼿꼿이 세웠다는 점 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고뇌가 있었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표지글 뿐만 아니라 책에 담긴 모든 글도,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남길 반찬 하나 없는 정갈한 시골 밥상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유명 배우의 시상 소감처럼, 절대 혼자 차린 밥상이 아닙니다. 책에는 교수님의 답글만 모아져 있지만 가족들이 보낸 엽서도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 형제, 형수님 조카들까지. 가족들의 든든한 믿음과 관심이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일 이었을 겁니다.
나중에, 여러번 읽고난 뒤에 새롭게 서평을 써 볼 생각 입니다. 긴 시간이 들여 쓴 글인 만큼 오랜 정성을 들여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래의 구절이 달리 보일지 궁금합니다.
'새해에 드리는 엽서 -아버님께'
'1월 4일부 서한과 영치금 잘 받았습니다.
늦추위를 할망정 아직은 춥지 않아 편히 지냅니다.
짧은 편지가 반드시 서운한 편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1978. 1. 12-'
제가 받은 편지도 아닌데 이내 서운한 맘이 들더니 괘씸하기도 합니다. 10년째 수감된 무기징역수가 가질 수 없는 얄미운 도도함 같았습니다. 근데 또 다시보면 짧은데도 공손하기 그지 없습니다. 더 많이 읽은 후에는 생각지 못한 뜻이 보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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