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9일 일요일

책 그리고 독서

P.S 글을 첨 쓰다보니 횡설 수설인 점을 양해해 주세요. 추후 편집 하겠습니다.ㅡㅡ;


독서란 무엇일까?

책을 읽고 간단하게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눠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책 그리고 독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린 흔히 취미가 '독서'라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주변 지인에게 '책' 좀 읽으라는 말도 듣게 된다.

대형 서점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서서 책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어떤 곳에서 저마다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카페나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독서'를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와 사람들의 생각들이 있을테지만
그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호기심 내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친구의 새로운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내가 수강하는 수업의 교수님에 대해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2012년 경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같은 수많은 관심거리에 대해
서로 다른 이유들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또한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독서'는 단방향 소통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글로 옮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책에는 작가의 생각, 감정, 의견, 상상 등등 무엇이든 담겨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다만 그 이야기들을 '읽을' 뿐인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시간에 작가의 표현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시간에 우리의 표현대로 작가의 이야기를 받아 들인다.

어떤 글들은(문장 혹은 문단)은 쉽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어떤 글들은 작가의 표현을 오해할 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로 글을 읽을 때 작가의 시간에 맞출 필요가 있다.
작가가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작성한 글은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어느정도 시간을 들여 작가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작가의 과거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작가의 뜻을 염두해 두며 독서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독서는 내가 하는 자유로운 행위인 것이다. 내가 느끼고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다.
작가를 존중 할 필요는 있지만 책을 읽는 시간중에는 책속에서 나는 절대자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때면 주인공들간의 숨겨진 사건들을 내가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내 경험들과 비교해가면서 주인공들의 감정을 만들 수도 있다.
때론 소설의 인물들 중 누군가가 되어 소설의 세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일련의 감정이입을 통하여 우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비소설을 읽을 때에도 우리는 작가의 글들에 찬성/반대 혹은 다른 새로운 의견을 첨가하여
책을 재구성 할 수도, 편집 할 수도 있다. 나의 독서의 시간에는 나는 새로운 작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이야기가 흘렀지만, 다시 돌아오면
작가는 책을 쓴 사람이고,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작가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사람을 인식할 때 그사람의 특징을 찾아내고 (쉽게는 외모적인 특징) 그 특징으로
그사람을 인지할 때가 많다.
사투리, 키가 큰 것, 얼굴에 점, 맑은 목소리 등등 사람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일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의 내용을 떠나서 우리는 책을 이루고 있는 '글'들에서 무언가를 느낄 때도 있다.
내 지인은 김훈씨의 '무심한' 필체를 좋아한다고 한다.
때로 글을 읽다가 특정 표현이나 단어들을 보며 마음에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책의 내용이 아닌 글의 어떤 것으로부터 작가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그 어떤 것을 우리는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은 그사람의 생각을 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무언가가 또한 담겨있다.

같은 말을 해도 그 말의 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작가에 따라 그 '단어'는 저마다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통하여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한가지 즐거움을 더 얻게 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감동받으며 본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권유한다.
필자가 느낀 감동을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느끼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동일한 영화를 보면서도 "동상이몽"을 경험할 때가 종종 있다.

독서도 유사하다. 우리는 재미있게 본 책을 종종 지인들에게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이들이 나와 동일한 '독서'를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동일한 사람에게도 어떤 시기에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서'가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책은 하나이지만 독서는 수많은 '독서'가 되어지는 것이다.

요즘 Social Network가 급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이야기 하고 서로의 생각들을 교환한다.
이를 보면서 스스로 사람들의 다양성과 새로움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의 Social Network가 디지털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책'은 아날로그로 진행되고 있는 Social Network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의 형태처럼 실시간으로 서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진 않지만
작가라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책에 담아 대중에 전한 것을
대중은 언제 어디서든 공유할 수 있다.
속도는 디지털의 그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공유의 영향력은 디지털에 뒤지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책 그리고 독서는 작가의 것이자 독자의 것이다.
그리고 한사람과 또 한사람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연결 고리라고 생각한다.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권만 읽은 사람" 이라고들 한다.
하나의 연결고리만을 가진 사람.

우리는 스스로 하나에만 얽매여 살아가면 넑게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많은 것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독서는 필요한 것같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공들여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놓은 '책'이 있다.
우리 들에게 그들은 그것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단지 편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댓글 없음:

댓글 쓰기